쌍봉사히스토리 철감선사 법회기도 템플스테이 찾아오시는길 묻고답하기

 

 

철감선사 도윤

사자산문의 선승입니다. 속성은 박씨. 호는 쌍봉. 도윤은 위입니다. 18세에 출가하여 귀신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하였으나, 원돈을 가르치는 화엄이 심인을 전하는 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 825년 당나라로 가셨습니다

마조도일의 제자 남전보원은 첫눈에 법기임을 알고 그에게 심인을 전한 뒤 그의 법인이 신라로 간다고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847(문성왕 9) 범일과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무르며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경문왕도 그때 그에게 귀의하였습니다. 868418일 문인들을 모아 법을 널리 펼 것을 당부하고 나이 71, 법랍 44세로 입적하였습니다.

시호는 철감선사이며, 탑호는 징소입니다. 죽을 때 오색 과명이 입에서 나와 과명이 입에서 나와 공중에 상서로운 상이 퍼져나갔다 하여 서기만천 철감국사라고도 합니다.

 

국보 제57호

 

               철감선사탑

1963121일 국보 제5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높이는 1.4m입니다. 8각 원당형에 속하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중에서 조식이 화려한 걸작품입니다.하 각부가 평면 8각형을 이루는 것은 통식에 속하나, 2단을 이룬 하석대에는 하단에 구름무늬, 상단에 사자를 조각하고, 상대석에는 앙련 위에 8각 대석이 있고, 2중으로 된 안상안에 가릉빈가 1구씩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을 받는 부분에는 연꽃무늬가 둘려 있습니다.

탑신은 각우각에 원주형을 세우고, 각면에는 전후에 문비형, 그 좌우에 신장상, 남은 2면에 비천상이 조각되었다. 옥개부에는 연목과 기왓골이 모각되고, 옥리에는 각 면에 1구씩의 비천상이 있습니다.

조루가 매우 정교하고, 탑신 원주에서 엔타시스의 수법을 볼 수 있으며, 옥개 추녀 끝 막 새에는 연꽃무늬까지 새겨져 있다. 능숙한 수법은 당시 조각의 대표가 될 만하며, 목조 가국의 충실한 모각은 당시의 목조건축 양식을 추측하게 합니다.

868년 입적한 철감을 위하여 탑비와 함께 세워졌으며,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채 방치되었다가 1957년 재건하였다. 건립은 철감이 입적한 후 오래지 않아 이루어 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철감선사탑비

1963121일 보물 제17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귀부 비좌 둘레에 육각된 구름무늬와 복련무늬의 조형형식은 연곡사 동부도비와 같은 부류입니다. 함주귀두는 용두화된 것이나 사실적이며, 귀배의 중곽갑무늬와 귀갑의 선곽은 매우 선명하고 정연하며, 귀두와 4족과의 비례가 알맞습니다.

특히 앞쪽 오른발의 삼조를 들어올린 동적인 표현은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조형입니다. 이수의 조형도 반결룡형이 생략된 구름무늬만의 연곡사 동부도비와 같은 형식입니다.

탑비에 따르면, 철감선사는 한주 사람으로 호는 쌍봉, 속성은 박이며, 798년에 출생하였고, 18세에 중이 되어 귀신사에서 수학하였습니다.

825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남천보원의 법을 전승하고, 847년 범임 국사와 함께 돌아와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시켰습니다. 86871세로 입적하였으며, 철감은 시호, 탑명은 징소라하였습니다.

 

 

 

'쌍봉사이야기 > 철감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감선사  (0) 2015.03.28
Posted by 쌍봉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